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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     제    목:   육조단경 반야품(般若品) 제 4
      작성자:   관리자
 


선지식이여!
만일 심히 깊은 법계와 반야삼매에 들고저 할진댄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으며 금강반야경(金剛般若經)을 지송하면, 곧 성품(性品)을 보게 되리니, 마땅히 알라! 이 경(經)의 공덕이 한량없고 무변하여 경 가운데서도 분명하게 찬탄하였거니와 이루 다 갖추어 설명치 못할지로다.
이 법문은 최상승 그것이라 큰 지혜 있는 이를 위한 말씀이요 상근기인(上根機人)을 위한 말씀이라 소근기인(小根機人)이나 소지인(小智人)이 듣게되면 불신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나니 그 무슨 까닭이겠는가? 가령 비유하건데 큰 용이 염부제에 비를 내리면 성읍과 마을이 다 떠내려 가는데 마치 대추닢 띄운듯 하겠지만 큰 바다에 비가 내렸다면 더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아서 만일 대승인이나 최상승인이 금강경(金剛經) 설(說)하는 것을 들으면 곧 마음을 열어 깨우칠 것인즉, 그러므로 본래의 성품에 제 반야-지혜가 있는지라 스스로의 지혜를 써서 항상 비추어 살펴보는 까닭으로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 줄 아느니라. 비유하건대, 빗물이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요, 원래 이 용이 능히 조화를 부려 일체 중생들과 일체의 초목.유정무정들로 하여금 다 윤택해지도록 하며 백(百)의 시냇물이나 물줄기들로 하여금 대해(大海)로 흘흘러 들어가 합해져서는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-지혜도 다시 이와 같으니라.

선지식이여!
작은 근기의 사람이 저 돈교(頓敎-활짝 깨닫도록 하는 가르침)을 들으매 마치 초목같아서 뿌리바탕이 작으니 큰비를 만나기만 하면 모두 저절로 꺼꾸러져 더 잘랄 수 없는 것처럼 작은 근기의 사람도 다시 이와 같아서 원래의 반야 지혜는 큰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 더불어 아무 차별도 없는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들으면 서도 열어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느냐? 삿된소견으로 무겁게 가리어 덮히고 번뇌의 뿌리가 깊은 연고이니 마치 큰 구름이 해를 덮어 버리면 바람이 불어 주지 않는 한 햇빗이 들어나지 않는것 같나니 반야(般若)-지혜도 다시 크고 작음이 없건마는 일체 중생들의 마음에 스스로 어리석음과 깨우침이 한결같지 못하므로 미혹한 마음이 밖으로만 보아 행을 닦으며 부처님을 찾아 다니나니 이는 아직 제 성품을 보지 못한 것이라 곧 "작은 근기" 이니라. 만일 돈교를 열어 깨우쳐 밖으로 수행하는 데 국집하지 아니하고 늘 제 마음에 다만 바른 견해(正見)을 세우므로써 번뇌(煩惱)와 진로(塵勞)에 능히 물들지 아니할 수 있으면 이것이 곧 성품을 본 것이니라.


인쇄  (date : 2006년 01월 24일 (02:18),   visit : 3915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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